미국 남서부, 지난 1200년 사이 최악의 대가뭄 직면…"인간 행위 영향이 42%"
© 경향신문 / 미국의 가뭄 정도를 나타내는 지도. 붉은 색에 가까울수록 가뭄이 심하다는 뜻이다. 자료|미국 가뭄 모니터 홈페이지
미국 남서부에서 지난 2000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대가뭄이 해당 지역을 대상으로 측정 가능한 역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치닫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기후학자인 파크 윌리엄스 등 연구진은 현재 미 남서부 지역이 겪고 있는 대가뭄이 측정 범위상 가장 오랜 시기인 서기 800년 이후 최악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했다고 AP통신 등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2년째 겪고 있는 미 남서부 대가뭄이 지난 1200년 동안 보지 못한 최악의 가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미국 남서부 지역은 주기적으로 가뭄을 겪어 왔는데 지난 2000년부터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줄어드는 가뭄과 함께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특히 2021년은 강수량이 이례적일 정도로 낮았다. 윌리암스 등 연구진은 주로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 시기 토양의 수분 함유량을 측정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서기 800년까지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윌리엄스는 몇년 전 논문에서 미국 남서부가 겪고 있는 가뭄을 ‘대가뭄’으로 명명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측정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가뭄 중에는 서기 1500년대에 있었던 가뭄이 유일하게 더욱 심각했었다고 지적했다.
윌리엄스는 이번 가뭄이 1500년대 가뭄을 능가하지는 않았지만 2021년 최악으로 건조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역사적으로 이 지역의 가뭄은 대체로 20년이 지나면 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가뭄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최악의 건조한 해가 등장한 만큼 이번 가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 남서부 지역은 현재 최악의 가뭄을 경험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민간의 합동 연구 프로젝트 ‘가뭄 모니터’는 미 서부 지역의 55%를 가뭄 상태로 분류했다. 미 서부를 적시는 콜로라도강에 있는 북미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큰 저수지인 미드 레이크와 포웰 레이크는 지난해 여름 역사상 최저 수위를 기록했다. 기본적으로 가뭄은 적은 강수량에서 기인하지만 기온 상승 역시 토양과 대기의 수분 증발을 촉진하면서 가뭄을 심화시킨다. UCLA뉴스는 2000년부터 2021년까지 미 서부 평균기온이 섭씨 0.91도 상승했다면서 1950년부터 1999년까지 50년간의 상승폭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일시적 온난화나 가뭄 등 기후변화는 지구가 주기적으로 겪었던 일이다. 미 남서부 지역이 겪고 있는 대가뭄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이다. 문제는 화석연료 연소 등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를 촉진시키고 이로 인해 대가뭄도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인간 활동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에 관한 29개의 가설적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비교한 결과 이번 대가뭄의 원인 중 42%가 인간 활동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없었다면 이번 대가뭄은 이미 2005~2006년에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이번처럼 가뭄이 심할 경우 최소 몇년 동안 다습한 기후가 있어야 평년의 습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대가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 참가하지 않은 조너선 오버펙 미시간대 확경학부 학장은 “기후변화는 문자 그대로 남서부의 수원지와 삼림을 굽고 있다”면서 “우리가 조만간 기후변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훨씬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경향신문(http://www.kha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