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기생충'.. 뉴욕 폭우 사망자 80%는 지하층 주민
2일(현지 시각) 허리케인 '아이다'가 동반한 폭우로 침수된 미 뉴욕시 브루클린의 한 도로에 차량들이 버려진 모습.
뉴욕 경찰은 이날 뉴욕시에서만 버려진 차량 500여 대를 견인했다고 밝혔다. 또 인근 뉴저지주에선 사망자 23명 중 대부분이 이렇게 폭우를 예상하지 못하고 도로에서 운전하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사망한 경우로 나타났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 등 동북부를 덮친 폭우와 돌발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2일 밤(현지 시각) 46명으로 불어났다.
이날까지 뉴욕주에서 확인된 사망자만 16명이고, 뉴저지(23명), 펜실베이니아(5명), 메릴랜드(1명), 코네티컷(1명) 등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실종자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폭우로 뉴욕 일대 주택 등 건물 수십만 채가 부서지고 20만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맨해튼 주요 도로가 침수되고 뉴욕시 지하철·버스 운행이 차질을 빚었으며 뉴욕 JFK 공항에서 항공 수백 편이 결항됐다. 뉴욕 경찰은 도로에 버려진 차량 500여 대를 견인했다. 뉴저지·펜실베이니아에서도 소방관과 경찰, 주방위군 등이 차량과 집에 갇힌 주민 수천 명을 구조했다.
이 지역들에선 1일 밤부터 2일 새벽까지 단 5~6시간 만에 약 230mm의 비가 내렸다. 뉴욕시 맨해튼 센트럴 파크엔 1시간 만에 약 76mm의 폭우가 쏟아져 1869년 기상 관측 이래 시간당 최다 강수량을 기록했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하늘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쏟아졌다”고 했다. CNN은 “(뉴욕에 내린 비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5만개를 채울 양”이라고 했다.
폭우는 늦은 밤 출퇴근하던 이들과 저지대 주택에서 잠자던 시민들을 덮쳤다. 뉴저지주 사망자 23명 중 대부분은 운전을 하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빠져 숨졌다.
지난달 29일 4급 허리케인 아이다(Ida)가 덮친 남부 루이지애나의 경우 잦은 악천후에 익숙해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고 제방을 높여 사망자가 4명에 그쳤다. 하지만 허리케인이 훨씬 약해져 열대성 폭우를 뿌린 정도였는데도 이에 대비하지 못한 미 동북부 일대에선 10배 이상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것이다.
특히 이번 폭우 사망자가 저소득층이 사는 지하 주거지에서 많이 나오면서, 미 최대 도시 뉴욕의 극심한 빈부 격차 실태를 드러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뉴욕시 사망자 13명 중 11명은 불법 이민자 등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퀸스 플러싱과 브루클린 등의 슬럼가 지하실에서 쏟아졌다. 뉴저지에서도 사망자 중 6명은 지하나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퀸스 등엔 지하 공간을 주거용으로 무허가 개조한 사례가 수천 가구에 달한다. 뉴욕의 비싼 주택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건축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화재와 수해의 위험에 상시 노출돼있다고 한다.
뉴욕의 특징이 되어버린 불법 지하 아파트는 당국이 그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과 뉴저지 당국은 지하 주거지를 중심으로 실종자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폭우는 지난달 29일 남부 루이지애나에 상륙한 4급 허리케인 아이다가 내륙 북동부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많은 비를 쏟아낸 데 따른 것이다. 평소 정확하기로 소문난 미 기상 당국은 당초 “아이다는 북상하며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됐고, 뉴욕 일대엔 하루·이틀간 비 70~150mm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시민들이 1일 밤 생전처음 보는 폭우에 넋을 잃고 나서야 ‘돌발 홍수 경고’와 ‘외출 금지령’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단시간에 세력을 키우는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은 20세기 초반보다 50% 증가했다”며 “더워진 공기가 습기를 더 머금게 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