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올림픽 보이콧, 국익을 잣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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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올림픽 보이콧, 국익을 잣대로

플로리다조아 0 597 2021.12.25 20:08

미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정부 사절단 안 보내
중국 고립시켜 미·중 무역전쟁 우위 차지할 목적
양국 패권 다툼 활용한 실리적 외교 전략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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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12월 9일 화상으로 개최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내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제24회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미국이 지난 6일 중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공식화했다. ‘외교적 보이콧(boycott)’을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다. 이후 미국의 뜻에 동참해 보이콧을 선언하는 국가가 늘고 있어 중국을 당혹스럽게 한다.

또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를 이끄는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며 고민에 빠진 나라가 적지 않다. 미·중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모드로 줄타기 외교를 펼치는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불과 40일가량 남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최종적으로 어떤 외교적 선택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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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4일 개막하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앰블럼. 겨울 ‘동(冬)’ 자와 스키 선수를 형상화했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의도

세계의 이슈로 등장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문제는 지난 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이날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신장웨이우얼(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계속되는 집단 학살과 반인륜 범죄, 인권 탄압 등을 고려해 베이징 올림픽에 어떤 외교 또는 공식 대표도 보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외교적 보이콧은 올림픽에 선수단은 참가하지만, 정부 대표단이나 외교 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걸 의미한다.

이번 조치는 이달 9~10일 미국이 세계 112개국 정상을 초청해 화상으로 개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정상회의 참가국들에게 지구촌 최강대국인 미국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 까닭이다. 정상회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을 명목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세계가 미국의 정치적 보이콧 결정에 호응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려는 ‘반(反)중국 스크럼 짜기’ 이벤트였던 셈이다.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번 보이콧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국 정부의 신장 지역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팽창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에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 부흥을 위해 내세운 ‘중국몽(중국의 꿈)’과 ‘강군몽(강한 군대의 꿈)’이 세계 패권국 미국을 자극하면서 두 강대국 간 대립과 갈등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국제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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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월 15일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압박에 맞선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세계 각국 반응… 중국 “곤혹”

미·중 패권 경쟁은 중국 양안(중국·대만) 관계와 홍콩 인권 문제를 둘러싼 외교 분쟁, 경제 분야의 치열한 무역전쟁 등이 보여 주듯이 세계 곳곳에서 마찰을 빚으며 갈수록 심화하는 양상이다. 국제 사회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이달 들어 베이징 올림픽을 매개로 정면으로 맞붙은 양국의 힘 대결 탓에 각국은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쪽 편에 서는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놓였다. 미국의 보이콧 결정 직후에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서방 동맹국들이 속속 바이든 대통령의 뜻에 동참할 계획을 발표하며 보이콧 움직임에 가세했다. 24일 일본도 동참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의 보이콧은 대가를 치를 것”, “스포츠와 올림픽을 정치화하려는 시도” 등의 입장을 내놓으며 단호한 대응을 경고했다. 지난 7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을 예고하는 등 강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중국은 최근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미국과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에 돌입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대해 미국을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일부 유럽 국가들에도 보이콧에 동참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가 미·중을 놓고 고심하며 진퇴양난에 빠진 이유다.

중국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과 G2로 급성장한 국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며, 시 주석의 3연임 체제를 공고히 구축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정치적 계산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22일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활동하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핑계로 동계올림픽에 불참하기로 해 올림픽 흥행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그래서 중국은 악재로 부상한 보이콧의 확산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때마침 프랑스가 올림픽 보이콧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보이콧 거부 의사를 밝혀 중국에 힘을 실어 줬다. 프랑스는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 개최국이라 이번 보이콧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역사적으로 미국 추종에 자주 거부감을 드러낸 프랑스의 국가 분위기도 작용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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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호주 발언 논란

미·중 양국이 올림픽 보이콧 사태로 충돌하자 당장 문재인 정부의 처지가 난감해졌다. 우리나라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데다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 추진에 중국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한 만큼 미국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맹방인 미국 정부의 국제 인권 보호 목소리를 마냥 외면하기도 곤란한 실정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미국의 보이콧 때문에 남·북·미·중 정상이 올림픽에서 만나 전 세계에 종전을 선언한다는 우리 정부의 구상이 어그러지고 말았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임기 말 종전선언에 전력을 쏟아 한반도 평화 진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호주를 국빈 방문해 스콧 모리슨 총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사실상 미국 입장을 무시한 채 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할 뜻을 내비친 걸로 읽힌다. 이에 따라 현 정부의 외교가 중국 편향적이거나 중국 눈치 보기가 과도할 지경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문 대통령이 보이콧이란 암초를 만나 임기 내 실현이 어려워진 종전선언에 집착해 중국에 잘 보일 의도로 보이콧 불참을 시사했다는 지적이다. 전략적인 고민 없이 우리의 외교 카드를 너무 일찍 드러내 보여 줬다는 것이다.

반면에 문 대통령 발언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와 한반도 정세 등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미·중 갈등상태와 국익을 충분히 감안해 신중하고 면밀한 대처가 필요한데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성급하게 선을 긋는 바람에 우리가 양국에게서 실리를 취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남북 관계가 매우 경색된 현재 환경에서 무리하게 관계 개선의 성과를 내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면, 자칫 소원해지고 있는 한·미 동맹을 더 악화시키고 한·중 우호 증진에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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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2월 9일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화상회의로 주재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 바람직한 외교 자세는

베이징 올림픽이 임박해질수록 국제 사회에는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더욱이 미국이 우리 정부에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공식 요청하고, 중국은 올림픽에 문 대통령을 초청해 빠른 확답을 주문할지 모른다. 그동안 미·중 갈등과 관련 현안이 닥칠 때마다 우리 정부의 외교는 한고비씩 힘들게 넘길 정도로 시험의 연속이었다. 이럴 때는 그동안 미국 보이콧에 호응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분명한 입장 표명 대신에 중국 인권 등 상황을 봐 가며 나중에 판단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자세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4일 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외교적 보이콧'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론 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는 지난 8일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 미국보다는 인권 문제를 시정하지 않는 중국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 같은 국민 여론을 꼼꼼하게 챙겨 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밝혔듯이 정부 입장은 보이콧 불참으로 많이 기울어진 것처럼 보여 균형감이 요구돼서다.

미국 정부의 보이콧에는 중국을 고립시켜 미·중 2차 무역전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중 패권 다툼의 장기화에 대비해 섣부른 결단과 위태로운 외줄 타기는 금물이라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다. 그렇지만 맹목적이거나 기계적인 중립과 애매모호한 외교 전략이 능사는 아니다. 이러한 대처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실리를 챙기기는커녕 미·중으로부터 되레 불신과 미움을 살 위험성이 크다. 다만, 일시적으로 결정을 미뤄 시간을 벌면서 현안에 맞는 외교 원칙과 대응 방향을 확고하고 정교하게 세운 뒤 능동적이면서도 세밀한 외교전을 펼치는 일이 중요하겠다. 국익의 극대화를 최우선에 두고 현명한 외교적 해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한 미·중 움직임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냉정한 판단을 기대한다.

미국의 보이콧 방침이 강경하므로 문 대통령의 올림픽 참석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기적으로는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어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이 이뤄질 경우 국내 정치계에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기존 국제 질서를 깨트리며 안하무인격으로 세계를 장악하려는 중국에 거부감과 반감을 가진 국제 여론과 서방 세계의 비난도 우려된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고위 인사들이 포함된 규모 있는 국가 사절단을 보내되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 절충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부디 문 대통령과 다음에 들어설 정권의 대통령이 미·중 패권전쟁 와중에서 복잡다단한 국내외 정세와 현실을 잘 살피며 실리적인 외교를 펼쳐서 국가 생존과 미래 발전의 길로 이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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