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사이렌에 패닉, 폴란드로 탈출” 국경 검문소 車 800m 줄섰다
폴란드 남서부 중심 도시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250㎞,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의 크라코베츠 검문소는 24일(현지 시각) 아침 이른 시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입국하려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폴란드 쪽에서 얼핏 살펴봐도 심사 창구 8개 뒤로 차량의 줄이 최소 800m 이상 길게 서 있었다. 이날 새벽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고, 우크라이나 내 항공편이 모두 결항되면서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려는 외국인은 물론, 우크라이나인들도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수속 절차가 까다로워져 시간은 더 지연되고 있었다. 검문소를 막 통과한 독일인 요나스씨는 “검문소를 지나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며 “특히 폴란드보다 우크라이나 쪽에서 매우 까다롭게 굴었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늦게 우크라이나에 국가 비상사태가, 24일에는 계엄령과 총동원령까지 선포되면서 우크라이나를 떠나려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특별 출국 절차’가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는 말 그대로 ‘전시 상황’에 돌입한 상태다.
21세기의 전쟁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검문소 앞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계속 스마트폰 메신저로 친구·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했고, 소셜미디어에서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침공 상황을 확인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실시간 영상에서 총 소리가 들리자 비명을 지르는 여성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일부 영상은 러시아 측이 공포감을 조장하려고 올린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왜건 차량을 몰고 밤새 달려 키예프에서 이곳까지 왔다는 바딤씨는 “어제 국가 비상사태 선포 이후 키예프 시내 곳곳에 불심 검문이 행해지고,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별일 없을 것’이라며 장담하던 사람들도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여기 오는 사이에 순식간에 사태가 악화됐다”며 “키예프로 돌아가야 할지 걱정이다”라고 했다.
가족 걱정에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밀려 있는 차량 사이로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더니 줄 한가운데 있던 승용차 한 대가 길을 역주행해 우크라이나 쪽으로 달려갔다. 검문소 주변을 통제하던 국경 수비대 한 대원은 “(가족들이 있는) 드니프로로 돌아가야 한다고 떼를 써 길을 열어줬다”고 밝혔다.
러시아 공습이 본격화되며 낮부터는 국경이 사실상 폐쇄 분위기다. 검문소에는 폴란드 국경 수비대 트럭들도 줄지어 늘어섰다. 검문소에 있던 취재진은 폴란드 경비대에 의해 모두 쫓겨났고 사진 촬영도 금지됐다. 이른 아침부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쪽 양방향에서 길게 늘어섰던 차량 행렬은 끊겼고 드문드문 일부만 오갈 뿐이었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차량은 5분에 3~4대꼴로 줄어들었다. 폴란드 화물차 기사 도브로밀씨는 “전면전이 나더라도 러시아군이 (서쪽 끝인) 이쪽까지 몰려올 거라고는 생각 않지만, 솔직히 우크라이나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한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는 폴란드인들은 이웃 국가가 침략당했다는 참담함과 함께 과거 2차 세계대전 때 겪었던 공포를 다시 떠올렸다. 폴란드는 당시 독일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의 정치적 밀약으로 동시 침략을 당해 분할 점령당했고, 다시 독일과 소련 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나라 전체가 전쟁터가 되고 군인과 민간인 6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검문소에서 만난 크라코프 시민 카롤씨는 “우리 외가는 유태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독일군에, 친가는 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자본가라는 이유로 소련군에 끌려가 살해당한 비운을 겪었다”면서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어떤 전쟁의 비극이 닥칠지 너무나 두렵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철수 명령을 받고 빠져나오는 길이라는 한 미국인 주재원은 “‘콜 오브 듀티’ 같은 전쟁 게임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됐다”며 참담해했다.
푸틴 대통령을 두고 ‘제2의 히틀러’가 나타났다는 말도 나온다. 침공으로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우크라이나 공식 트위터 계정은 히틀러가 푸틴의 뺨을 어루만지며 웃는 풍자 그림을 올리고 “이것은 밈이 아니라 당신 그리고 우리의 지금 당장 현실”이라고 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23일 푸틴의 행보를 두고 “매우 악마”라며 그를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을 노리던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모습에 비유했다.








